Afterglow

영화 리뷰

  • [비평]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우리의 뒷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에드워드 양의 편지

    [비평]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우리의 뒷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에드워드 양의 편지

    하나 그리고 둘 포스터(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우리는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173분의 대답

    Writer : CineCalin

    어떤 영화는 보고 나면 마치 인생의 한 챕터를 통과한 듯한 기분이 듭니다. 대만 뉴웨이브의 거장, 에드워드 양(Edward Yang)의 유작 **<하나 그리고 둘(Yi Yi)>**이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러닝타임 173분. 3시간에 육박하는 이 긴 호흡 앞에 서면 누구나 처음엔 막막함을 느낍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 저는 감독에게 기분 좋게 “당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은 지루한 장광설이 아니라, 삶의 모든 계절(결혼, 탄생, 이별, 죽음)을 한 폭에 담아낸 거대한 풍경화였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에드워드 양이 세상을 떠나기 7년 전에 만든 작품입니다. 갑작스러웠던 그의 부고를 생각하면, 이 영화는 그가 세상에 남긴 **’영상으로 쓴 유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1. 양양의 카메라 : 보이지 않는 진실을 찾아서

    영화에는 ‘양양’이라는 꼬마가 등장합니다. 작고 왜소한 이 아이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묵묵히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닙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사람들의 **’뒤통수’**만 찍어댑니다.

    아버지가 왜 그런 걸 찍느냐고 꾸중하자, 양양은 이렇게 답합니다.

    “슬픔은 뒤에선 안 보이잖아요. 사람들은 자기 뒷모습을 못 봐요. 그래서 제가 찍어서 보여주는 거예요.”

    이 대사는 에드워드 양의 영화적 선언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나의 진실, 나의 슬픔,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뒤에서 찍어줘야만 하죠. 수영장 물속이 궁금해 목숨 걸고 뛰어드는 양양은, 곧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의 이면’**을 보여주려 했던 에드워드 양 자신이었습니다. 비록 그것이 세상의 비웃음을 살지라도 말입니다.

    2. 반복되는 역사, 그리고 모방하는 삶

    영화에서 가장 영화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아버지 NJ가 도쿄에서 첫사랑을 만나는 장면과, 딸 팅팅이 타이베이에서 데이트하는 장면이 **교차 편집(Cross-cutting)**되는 시퀀스일 것입니다. 과거의 사랑을 다시 만난 아버지와, 현재의 사랑을 시작하는 딸. 두 시간대는 마치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오버랩됩니다. 이를 통해 감독은 **’우리의 삶은 결국 과거의 반복이자 모방’**이라는 서늘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선택’**은 갈립니다. 딸의 데이트 상대인 ‘뚱보’는 위선적인 영어 선생을 살해함으로써 비극적이지만 주체적인 의지를 드러냅니다. 반면, 아버지 NJ는 세월에 휩쓸립니다. 그는 진품을 만드는 장인 ‘오오타’와 일하고 싶어 하지만, 결국 회사의 결정에 따라 ‘모방을 잘하는 값싼 회사’와 계약해야만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짜’를 추구하는 것은 위험하고, ‘모방’은 안전합니다. NJ의 무력한 타협은 어쩌면 현실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늙어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3. “저도 늙어간다고 말하고 싶어요”

    영화의 엔딩,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꼬마 양양이 읽어 내려가는 조사는 영화사(史)에 남을 명장면입니다.

    “할머니, 전 모르는 게 많아요. 커서 남들이 모르는 걸 알려주고, 못 보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 할머니가 늘 늙어간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저도 늙어간다고 말하고 싶어요.”

    갓난아기보다 아주 조금 더 늙었을 뿐인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 “늙어간다”는 고백. 우리는 모두 늙어갑니다. 하지만 어떻게 늙어가야 할까요?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 보이지 않는 뒷모습은 모른 척하며 적당히 타협하며 늙어가야 할까요? 에드워드 양은 우리에게 그 질문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Writer’s Note] 영화 밖의 기억들

    • 동동의 여름방학: 저는 에드워드 양을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 <동동의 여름방학(1984)>에서 배우로 먼저 만났습니다. 동동의 아버지 역으로 출연했던 그를 보며, 대만과 우리의 어린 시절 풍경이 놀랍도록 닮아있다는 생각에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 사라진 잡지들에 대하여: 이 글을 쓰며 예전 자료를 찾으려다 보니, <필름 2.0>, <프리미어> 같은 영화 주간지들이 모두 폐간되어 사라졌더군요. 에드워드 양이 보여주려 했던 ‘진실’을 담론화하던 매체들이 사라진 지금, 온라인의 바다에서 그의 흔적을 찾는 일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기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양의 카메라처럼 말이죠.